작가의 향기
겨울의 길목에서 이번에 많은 시나리오를 한꺼번에 읽었습니다.
특히 제주 로케이션 활성화를 위한 시나리오 공모라 설레이는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꽁꽁 언 땅에서 한 알의 씨앗을 찾는 마음으로 읽어나갔습니다.
우선은 제주의 작가들이 많이 참여하여 반가웠습니다.
참신하고 소소한 감정을 살린 18세 작가부터 야심찬 기획 하에 방대한 작업을 엄청난 에너지로 이루어낸 불혹을 넘은 작가까지... 제주의 다양한 작가군에 놀랐고 그들의 가능성과 뜨거운 에너지에 다시 한 번 놀랐습니다. 반면 제주를 소재로 대중이 재미있게 공감할 수 있는 시나리오까지는 아직 높이 벽이 있다는 것도 실감했습니다. 제주인임에도 불구하고 엄격한 질적 잣대를 대야하는 저 자신에게는 조금 괴로운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저를 포함한 다른 심사위원분들이 고심 끝에 선택한 작품들은 우열보다는 가능성에 무게를 더 두었고, 단지 시나리오만이라는 문학적 고민보다는 현실적으로 영상화 되었을 때 가질 수 있는 메리트를 더 숙고하였다고 여겨집니다.
이번 심사에서 두드러진 현상은 작가군의 격차가 심한 것이었습니다.
작가의 향기로 치면 풋풋함에서부터 원숙한 내음까지 다양했습니다. 작가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우리들은 흔히 천형을 받았다고 합니다. 어느 봄날, 작가에 대하여 제 노트에 적어두었던 기록이 있어 소개합니다.
어느 봄날 전시회를 돌다가
작가들의 진심어린 고백을 읽었어요.
날 선 작두를 타는 무녀의 심정으로
오늘도 붓을 든다는 원로작가..
또
Here, Now?
공간과 시간을 화두로 오랜 세월 짊어졌더니
Nowhere 더라는 중견작가..
작품은 정말 당신들을 꼭 닮았더군요.
.....
아, 이게 당신의 향이군요!
작가의 향기는 절로 나는 것이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닌가봅니다.
작가의 향은 고뇌와 인고의 시간인 듯합니다.
작가의 향은 눈물과 기쁨이 아롱졌기에 우리가 희노애락을 느끼나 봅니다.
작가 여러분들이 지새웠을 수많은 밤과 늦은 아침의 눈부신 햇살만큼 절치부심(切齒腐心)했을 노고에 경의를 표합니다.
저 역시 아직 먼 산을 바라보며 걷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산은 분명 세상의 향기를 다 담은 작가의 향이 있는 산이라 기대됩니다.
그 산을 바라보며 신발끈을 매고 있을 여러분에게 건투와 행운을 빌겠습니다.
2007.12. 양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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